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4년 한국시리즈 (문단 편집) == 개요 == ||<-2><:> {{{+2 {{{#edd36c '''1994'''}}} {{{#edd36c '''프로야구'''}}} {{{#ffffff '''한국시리즈'''}}}}}} || ||<#ff0000> [[파일:태평양 돌핀스 심볼(1988~1995).png|width=130]] ||<#c30452> [[파일:LG 트윈스 심볼(1990~2005).png|width=130]] || ||<#ff0000> [[태평양 돌핀스|{{{#131B66 {{{+1 '''태평양 돌핀스'''}}}}}}]] ||<#c30452> [[LG 트윈스|{{{#ffffff {{{+1 '''LG 트윈스'''}}}}}}]] || [[https://youtu.be/TOStd7GIsLs|1,2차전 하이라이트 영상]] [[https://youtu.be/fWyzP5NCTRQ|3,4차전 하이라이트 영상]] 1994시즌 페넌트레이스 1위 [[LG 트윈스]]와 2위 [[태평양 돌핀스]]가 맞붙었던 시리즈. LG 트윈스가 4연승을 거두며 V2를 달성했다. 한국시리즈 MVP는 1990년도에 이어 [[김용수]]가 차지했다.[* 1990년에는 선발 투수, 1994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MVP를 차지했다.] 김용수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2번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이후 [[이종범]]이 1997년, [[정민태]]가 2003년, [[오승환]]이 2011년, [[양의지]]가 2020년에[* [[양의지]]는 2016년 두산 소속으로, 2020년엔 NC 소속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각기 다른 팀에서 한국시리즈 MVP를 한 번씩, 총 2번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2번의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였다. [[스윕|4연승]]으로 싱겁게 끝났지만, 2차전만 빼고는 모두 한점차 접전을 펼친 시리즈이기도 했다. [* 당시만해도 태평양 돌핀스의 큰 경기 경험이 [[KBO 플레이오프/1989년|1989년 플레이오프]] 이후 가을야구 경험이 전무한 선수단이라 결정적인 고비를 넘지 못하고 실책으로 자멸했다. 결정적인 사례가 후술할 3차전의 김갑중 만세 사건 ] 특히 1차전에 태평양 돌핀스의 좌완 에이스 [[김홍집(야구)|김홍집]]의 141구 완투패[* 당시 김홍집으로부터 끝내기 홈런을 친 [[김선진]]은 입단 후 성적이 좋지 못해 1994 시즌 종료 후 방출 대상이었으나 이 홈런으로 인해 방출되지 않고 살아남았고 2000년 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연장하는데 성공했다.]가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LG팬들에게는 추억의 [[리즈 시절]]이나 해도 다름 없었다. 이 우승 이후 2022년까지를 기준으로 ~~[[롯데 자이언츠|어느 구단]]과 더불어~~ '''28년 동안 우승 기록이 없다'''. 28년이면 강산도 거의 세 번이나 변하는 시절인데도(…). ~~아 옛날이여!~~[* 1994년의 LG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 때에는 LG의 야구인들도 팬들도 정말 행복했었다고 한다. 야구장에 갈 때마다 '''오늘은 어떻게 이길까?'''라고 생각을 했었다고...] 태평양 돌핀스도 비록 아쉽게 스윕패를 당했지만 [[삼미 슈퍼스타즈]]와 [[청보 핀토스]], 그리고 태평양 초창기의 암울한 [[만년 꼴찌]] 시절을 딛고 [[인천광역시]] 연고 프로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달성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시즌을 보냈다. 특히 이때 구축한 [[정민태]], [[정명원]], [[최창호(야구선수)|최창호]], [[김홍집(야구)|김홍집]] 등 막강 투수진은 이후에 인수되는 [[현대 유니콘스]]로 이어져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군림한 투수 왕국 현대 왕조의 기반을 닦은 시리즈로 평가할 수 있다. 94년 준우승은 이후 96년 준우승, 98년 우승으로 연결되며 인천팬들의 패배의식을 떨쳐버리게 하는 시작이 되었으며 비록 2000년 현대가 인천을 떠난 이후에도 잔류한 삼청태현 팬들에게는 이후 06년까지 13년간 94-96-98-(99)[* 5위였지만 5할 이상] -00-01-02-03-04-06 [* 94~07년까지 14년동안 10회 5할 승률, 포스트시즌 9회 진출, 우승4회, 준우승 2회. 95,97,05,07 단 4 시즌만 5할 이하] 으로 이어지는 4강황금기의 시작으로 94년이 회자된다. 삼청태현 팬에게는 정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아련한 시리즈. [* 이후 2008년 히어로즈 창단으로 삼청태현의 인연은 종료. 삼청태현-히어로즈를 응원하는 오래된 팬들에게는 5년의 암흑기 이후 13년~22년까지의 10년간 포스트시즌 9회 진출. 준우승 3회의 황금기가 다시 열리며 94년부터 따지면 28년동안 포스트시즌 18회 진출. 5할승률 이상 19회라는 어찌보면 과거 82~93까지의 암흑의 10년을 상쇄하는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편 정동진 태평양 감독은 1990년에 이어[* 정동진 감독은 1990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었다.] 1994년에도 LG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무르는 바람에, 2023년 현재까지 LG 트윈스를 상대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거둔 유일한 감독이 되고 말았다. 1990년 한국시리즈와 묘하게 공통점이 많다. 둘 다 LG가 4연승으로 스윕했고, 한국시리즈 MVP는 같은 선수가 차지[* 공교롭게도 1990, 1994 리그 MVP는 둘 다 [[선동열|해태]] [[이종범|선수]]가 받았다.], 상대팀 감독이 [[정동진(1946)|동일인]]이라는 것과 큰 점수차 승부, 11회말 끝내기 승부, 역전 승부 등이 각각 한 번씩 존재한다는 것[* 큰 점수차 승부는 1990년 1차전/1994년 2차전, 11회말 끝내기는 1990년 2차전/1994년 1차전, 역전 승부는 1990년 2차전/1994년 3차전.], 그리고 두 시리즈 모두 일요일에 끝났다는 점이 있다. 1~3차전 승리투수도 김용수-정삼흠-김기범이다.[* 1990년에는 김용수-김기범이 선발승, 정삼흠이 구원승이었지만 1994년은 반대로 정삼흠이 선발승, 김용수-김기범은 구원승이었다.] 거기다 LG가 원정팀인 상태에서 우승을 거뒀다.[* 따라서 당연히 우승 순간에 착용한 유니폼 색상도 동일하다. 이 검정 유니폼을 2011년 시즌 중에 갑자기 없애면서 팬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차명석|당시에 불펜투수였던 프랜차이즈 선수 중 한명인 그]]가 2019년에 단장이 되면서 검니폼을 부활시켜 팬들은 당연히 반가워했다.] ~~LG는 언제 잠실에서 우승을 거둘 수 있을까...~~ 중계한 방송국 순서도 MBC-KBS-MBC-KBS다.[* 왜 [[SBS]]가 없는가 라고 궁금해할 수도 있는데 1990년에는 SBS TV가 개국하기 전이었고 1994년은 SBS의 단독 중계가 이뤄지기 전이다.] 덧붙여서 1990년 한국시리즈는 양팀의 모기업이 전자업계 라이벌[* 금성사(현 LG전자) vs 삼성전자]이었고, 1994년 한국시리즈는 양팀 모기업이 화장품 및 생활용품 라이벌[* 럭키(현 LG생활건강) vs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이었다는 점도 있었다. 1994년 한국시리즈는 원년 이후 도중에 모기업 및 팀명이 바뀐 팀끼리 처음 맞대결한 시리즈이다.[* 태평양은 1988년 청보 핀토스를 인수, LG는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하며 팀명이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1994년과 1998년 한국시리즈의 LG와 태평양-현대 맞대결 이후로 창단 이후 모기업이 변경된 팀끼리 맞붙은 한국시리즈는 전무하다. KIA의 경우는 모기업이 변경된 이후로 LG나 현대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적이 없었고, SK와 키움의 경우는 타 구단의 인수 형태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 창단한 구단이며, 두산과 한화는 모기업은 바뀌지 않고 팀명만 변경된 경우다. SK는 2021년부터 SSG로 모기업이 변경된 상태.] 그리고 양팀 감독인 [[이광환]], [[정동진(1946)|정동진]] 이 두 감독은 각각 자율야구와 선수를 혹사시키지 않는 관리야구[* 정동진 감독의 경우 [[김성근|전전임 감독]](...)의 혹사로 인해 몸상태가 안 좋은 여러 선수들이 치료를 받고 컨디션을 제대로 회복할 때까지 오랜 시간 출전을 시키지 않았을 정도였다.]의 정점에 달한 인물들이라 최근들어 선수 혹사와 권위주의 등으로 지탄을 받는 감독들에 비해 가장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지도자들이기도 했다. LG 트윈스의 이광환이 투수 분업화 도입을 통해 KBO의 경기 내적인 요소를 바꿨다면, 정동진은 과감하게 팀의 주축 투수들을 재활시키고 그것이 성공하면서 경기 외적인 요소를 바꿨다. 아무튼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한 두 감독이 우리나라 투수들의 선수생명을 연장시키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이런 점을 들어서 "1994년은 한국프로야구의 기념비적 분기점"이라고 평가하는 주장도 있을 정도. 또한 구단 연고지가 영남·호남 지역이 아닌 팀끼리 붙은 ~~[[한화 이글스|충청도]]는 치지도 않네~~ 최초의 시리즈이자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연고팀끼리 붙은 최초의 시리즈이기도 하다.[* 역대 한국시리즈 중에서 영남과 호남 연고팀이 올라오지 못한 시리즈는 이 해 이후 [[1998년 한국시리즈|1998년]], [[2000년 한국시리즈|2000년]], [[2003년 한국시리즈|2003년]], [[2007년 한국시리즈|2007년]], [[2008년 한국시리즈|2008년]], [[2018년 한국시리즈|2018년]], [[2019년 한국시리즈|2019년]], [[2021년 한국시리즈|2021년]], [[2022년 한국시리즈|2022년]] 등 총 9차례가 있었다.] 특히 양 팀의 홈구장인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과 [[숭의야구장]]을 [[서울 지하철 2호선|지하]][[수도권 전철 1호선|철로]] [[종합운동장역(서울)|오갈]] [[도원역|수 있다]]고 해서[* 한국시리즈가 시작되기 3개월 전인 1994년 7월에 [[도원역]]이 갓 개통됐다. 그 전까지는 [[제물포역]]에서 내려서 공설운동장까지 버스를 타야 했다.][* 1994년 당시는 수도권 전철 노선이 1~4호선에 이 해 9월 부분 개통된 [[분당선]]이 전부였다.] '''"지하철 시리즈"'''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붙은 시리즈[* 이후 1998, 2007, 2008, 2018, 2019, 2022년에 지하철 시리즈가 성사되었다.]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